패션 디자이너 지현이 창고에서 먼지떨이를 하다가 고무장갑이 찢어지는 바람에 분홍색 염료를 온몸에 뒤집어썼다. "이거 완전 핑크판다 등장씬이네… 아!" 그녀가 화들짝 놀란 건 창고 구석에서 1980년대 핑크 퍼코트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 유품인 줄 알았는데… 이게 바로 레트로 파스텔이야!"
그날 밤, 지현의 브랜드 '얼음공주' 매장에 난동이 벌어졌다. 마네킹들이 몰래 회의를 열고 있었던 것. "우린 매년 눈 색깔처럼 하얗기만 해! 이젠 질렸어!" 레드코트 마네킹이 외쳤다. 파란 스카프를 두른 마네킹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들은 바로는 인간들이 파스텔 겨울을 한다던데. 우리도 반란을 일으키자!"
다음 날 아침, 지현이 매장 문을 열자 눈이 번쩍 떠졌다. 모든 겨울 옷이 스스로 색을 바꾼 것이었다. 화이트 패딩은 베이비블루로, 검정 롱코트는 라벤더로 변해 있었다. "이거 뭐야? 유행을 앞서가는 자기 의지 패션?"
첫 번째 희생자는 겨울왕국처럼 입고 온 손님이었다. "저기 그 연분홍 트렌치코트…" 손님이 손을 댄 순간 코트가 자꾸만 움직이며 피했다. "이봐요! 살금살금 따라오지 말고 정식으로 구매하라고요!" 코트의 소매가 손님의 지갑을 훔쳐 계산대로 밀어 넣었다.
옆 매장 주인인 남훈이 문을 두드리며 비웃었다. "너희 매장 귀신 들린 거 아냐? 겨울에 파스텔은 역세계 유행이잖아."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남색 스카프가 공중에서 묶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쉿! 우리 혁명 방해하지 마!"
지현은 상황을 관찰하며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옷들이 염료 대신 빛을 반사해 색을 바꾸고 있는 것이었다. "이거 천연 광선 염색 기술이야! 햇빛 각도에 따라 미묘한 색조 변화까지…" 그녀가 설레는 손으로 노트북을 열었지만, 카키색 목도리가 키보드를 차지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카탈로그 촬영이 아니라 자유다!"
문제는 옷들이 지나치게 독립적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모피 부츠가 혼자 신발장을 뛰쳐나가 길거리 패션쇼를 열었고, 민트색 장갑은 커플 손을 강제로 잡게 만들었다. "이 장갑이 우리 애정온도를 측정한대요!" 한 커플이 홍당무진 얼굴로 속삭였다.
남훈이 경쟁심에 불타 자신의 매장 옷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저쪽은 다 파스텔인데 너흰 왜 칙칙하냐?" 그 말에 검정 코트 군단이 폭동을 일으켰다. "우리도 변신할 권리가 있거든!" 이틀 후, 남훈의 매장은 무지개색 천막으로 변해 있었다.
결국 두 매장은 합동 패션쇼를 열기로 했다. 개막식 날, 지현의 스카프들이 공중에서 발레를 추며 색을 바꿨다. 관객들이 휴대폰을 들이대자, 옷들이 더욱 화려한 색상으로 반응했다. "이건 옷이 아니라 조명 쇼야!"
남훈이 마지막으로 등장해 트위드 코트를 벗자, 안에서 파스텔 유니콘 잠옷이 나타났다. "겨울은 무겁게 입는 게 아니라 재미있게 입는 거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에 마네킹들도 기계음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에필로그: 색채의 자유선언
한 달 후, 동네 빨래방에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회색 후드티가 스스로 분홍빛으로 물들더니 옆에 있던 청바지에게 중얼거렸다. "이제 우린 계절의 노예가 아니야."
지현의 매장은 24시간 무인 운영으로 바뀌었다. 옷들이 직접 고객과 협상하는 시스템. "이 코트는 최소 3일 대여에 계절 통과의례 필수죠." 코트의 까다로운 조건에 눈물짓는 고객들도 있었다.
남훈은 파스텔컬러 테라피스트로 전직했다. "당신의 에너지에 맞는 색을 처방해 드립니다. 오늘의 추천은 회오리감정용 라일락!"
어느 겨울밤, 지현이 창고에서 새 발견을 했다. 1990년대 네온 컬러 스키복이 페스텔 옷들을 구석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다음 시즌 주인공은 나야!" 네온 옷들의 외침에 지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젠 정말 옷들이 살아있는걸요?"
(이 이야기는 모든 유행은 저항에서 시작됨을 일깨웁니다. 당신의 옷장에도 반란이 잠들어 있을지 모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