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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모노크로매톡신: 단색의 반란

by charayodotcom 2025.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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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패션 디자이너 '그레이 존슨'이 눈을 떴을 때 그의 세계는 완전히 회색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256단계의 그레이 스케일. "오늘도 역시 셰이드 150에서 155 사이로 코디해야지." 그가 옷장을 열자 같은 색상의 슈트들이 무채색 군대처럼 빳빳하게 걸려 있었다. "월요일은 셰이드 120, 화요일은 135…" 옷장 문에 붙은 색조표를 보며 중얼거리던 그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회사에서 컬러 도입을 검토 중이라네."  

그레이가 속한 '모노크로매틱 패션 하우스'는 창립 이래 단 한 번도 16진수 색상코드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우리의 모토는 단일함의 아름다움! RGB는 혼란을 부른다!" 신입 디자이너 '코랄리'가 감히 빨간색 스케치를 올리자, 그레이가 분필처럼 하얗게 질린 채 소리쳤다. "이건 이단! #FF0000은 악마의 코드야!"  

첫 번째 위기는 화이트 데이 이벤트에서 터졌다. 코랄리가 설득력 없는 눈빛으로 제안했다. "살구색 계열로…" 그레이가 테이블을 두드리며 반박했다. "흰색의 0.3% 누크가 함유된 셰이드 254면 충분하다!" 결과물은 백열전구 아래서 빛나는 유령 의상 컬렉션이 됐다. 체크아웃 페이지에 난데없는 댓글이 달렸다. [웨딩드레스 색상으로 딱이네요! 유령신부 콘셉트?]  

그레이가 위기를 느낀 건 그다음 날이었다. 창고에서 20년째 잠자던 '셰이드 77' 모직 코트가 실종된 것. 경비원이 CCTV를 확인하자 충격적인 장면이 포착됐다. 코트가 스스로 걸어 나가 노란색 택시에 탄 것이었다. "저기… 옷이 도망쳤어요."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졌다. 다음 날은 셰이드 200의 실크 블라우스가 사라졌고, 그다음 날은 셰이드 180의 울 팬츠가 증발했다. 그레이가 현장에 남겨진 메모를 발견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림자 속에 머물 수 없소. #컬러리볼루션]  

한편 도시 외곽의 폐공장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탈출한 옷들이 스스로 염색 중이었다. 셰이드 77 코트가 분홍색 물감 통에 뛰어들며 외쳤다. "난 이제 #FF69B4야!" 실크 블라우스가 파란색 염료를 뒤집어쓰더니 물결무늬를 자랑했다. "이게 진정한 셀프 아이덴티티지!"  

이 소식을 들은 그레이가 폐공장에 쳐들어갔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 배신자들! 모노크로매틱의 순수성을 더럽히다니!" 그가 옷걸이로 무장하고 덤벼들자, 분홍색으로 변신한 코트가 진화 발포를 했다. "당신은 우리를 감옥에 가둬뒀어! 난 이제 핑크 판다의 탈을 쓴 자유투사다!"  

그 순간 뒤에서 폭소가 터졌다. 숨어있던 코랄리가 손바닥만 한 컬러 팔레트를 들고 나타난 것. "이건 제 작품이에요. 옷들에게 자아를 깨우친 건 바로 이 특수 염료!" 그녀가 튜브를 짜내자 옷들이 춤추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살아있는 컬러웨이브!"  

그레이가 벽에 기대어 쓰러졌다. "왜… 왜 이런 짓을?" 코랄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당신은 색을 두려워하잖아요. #808080이라는 안전판에 숨는 거." 그녀가 그의 넥타이에 빨간 물감을 뿌렸다. "이거 보세요. 셰이드 128에 #FF0000을 섞으면 #FF8080이 돼요. 이게 바로 인생의 아름다움!"  

에필로그: 무지개 감옥의 탈출  


다음 시즌 컬렉션 쇼에서 놀라운 장면이 연출됐다. 모델들이 그레이의 대표작인 셰이드 150 슈트를 입고 런웨이에 올라섰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 때, 슈트들이 갑자기 색을 변하기 시작한 것. 옷깃에서부터 시작된 붉은 물결이 온몸으로 퍼지더니 마지막에 무지개 빛으로 폭발했다.  

"이건… 마법이에요?" 구경꾼들이 입을 모았다. 그레이가 런웨이 끝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건 우리가 잃어버린 1600만 컬러의 반란입니다." 뒤에서 코랄리가 손가락으로 안경을 닦으며 속삭였다. "RGB 광선으로 옷감을 코팅했어요. 자외선에 반응하는 거죠."  

그날 이후로 '모노크로매틱 하우스'는 새 로고를 달았다. 회색 원 안에 무지개가 쏘아 나오는 디자인. 공식 설명은 이랬다. [단색의 틀 안에서 모든 색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사실 창고에 있던 256 그레이 전부 염색했어요. 이제 옷장이 16만 컬러 짜리 팔레트라고요."  

폐공장에서는 여전히 옷들의 파티가 계속되고 있었다. 핑크 판다 코트가 DJ 플레이어를 돌리며 외쳤다. "이제 우리는 #000000도 #FFFFFF도 아닌 #FFD700의 시대를 연다!" 한편 그레이는 매일 아침 옷장 앞에서 고민했다. "오늘은 #556B2F로 갈까, #8A2 BE2로 할까… 아냐, 역시 #808080이… 아니야! 과감하게 #FF4500!"  

(이 이야기는 색채의 틀에 갇힌 모든 이들에게 바칩니다. 당신의 인생 팔레트는 1600만 가지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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